지킬 박사와 하이드 문학일기

관계에서 비아냥을 들을 때면 자동적으로 원인 분석에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마음의 근원은 어떠한 처리 과정을 거쳐서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심오한 내면 그 자체는 상당 부분 복잡하다고 생각하니까. 청자를 제외한 화자의 입장에서만 봐도 말이다. 대부분은 각자의 어린 시절이 형성해 놓은 바탕에 쌓여가는 일상이 만들어 재생성 된 스토리는 인격을 조금씩 바르게도 뒤틀리게도 한다. 그래서 하루하루 잘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늘 많이 만들어 놓는 것에 게으르면 안 된다는 말들을 하는가 보다.  

"자, 이제 남은 일을 정리해야겠군요. 현명하게 행동하겠소? 내가 이 컵을 손에 들고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당신 집에서 나가길 원하시오? 아니면 탐욕스러운 호기심이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중이오?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답하시오, 당신이 결정하는 대로 될 것이니. 당신 결정에 따라 당신은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소. 더 부자가 되지도, 더 많은 것을 배우지도 못한 채 그저 죽을 곤경에 처한 한 사람을 도와주었다는 뿌듯함만이 영혼의 양식이 되겠지. 아니면, 당신의 선택에 따라 새로운 지식의 영역과, 명예와 권력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 당신 앞에 펼쳐질 수도 있소. 바로 여기, 이 방에서 즉시 말이오. 당신의 시야는 한 천재에 의해 환히 열리고 사탄에 대한 불신도 흔들릴 것이오."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내가 별로 미더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하지만 난 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너무 깊이 개입했기 때문에 이제 와 멈출 수는 없군요. 끝을 봐야겠소."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일부 내용이다. 하이드의 모습을 한 지킬은 래니언 박사의 선택을 요구하고 이에 래니언 박사는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밝힘으로 비밀을 공유하는, 어찌 보면 반 타의적 선택을 한다.

인간의 내면은 언제나 꽁꽁 숨겨도 들켜서 내보여지기 좋은 추상이다. 마음을 빼고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도표와 그래프를 다루는 직업들 역시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추상적 심리를 평가하고 수치화 해놓는 작업은 늘 기득권들에게 좋은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질서를 잡는 기준이 된다. 통섭이라는 인문학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던 것도 비슷한 때를 같이 했던 것이 아닐까. 어떤 이들에게 획일화된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예상할 수 있는 심리는 늘 관찰의 영역에서 벗어나더라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회적 영역에서 오로지 한 사람의 선으로만 평화를 이루어 낼 수도 없고 누군가의 자비로만 이루어진 용서도 없다. 여러 가지 마음들이 모여 부딪치는 상충을 거듭하면서 개개인은 중심을 잡으며 평화를 유지하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형성을 유지한다. 세상은 기존의 근육을 파열시켜 새로운 근육을 만들어 내는 일에 비유하는 것은 꽤나 적절한 것 같다.

그 어느 것에도 관심 없는 히키코모리적 관점에서 사회는 늘 분열과 생성을 거듭하는 난잡성을 자초하는 시대이다. 이유야 그것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지켜보는 사람들과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한 인간을 위대한 무엇으로도 만들었다가 용도가 다 한다면 특정 요소들을 모아서 유해한 인물로 재생산이 편리하기 때문인 측면도 다분하다고 본다.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을 해야 한다면 참고할 만한 무언가의 자료를 교묘히 배치시켜서 언제가는 맞아 떨어뜨릴 우연성에 제동을 걸고 증거로 들이밀 수 있는 가치 능력. 정치의 생명이나 언론의 생명도 그런 것이 아니겠나 싶다.

그러는 사이 거짓 증언들로 이루어진 온갖 세력들은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생각되는 반대 세력들을 분열시키기에 급급한 프레임을 직조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섬뜩해진다.

어제의 그알에서 보았던 사이비 교주는 그런 예의 일부가 아닐까.

분명 나는 음모론을 믿는 편이고.

그런 의미에서 미셸 주베는 반 고발성 '꿈도둑'을 생산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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