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자를 쓰는 힘_ 사이토 다카시 문학일기

누구나 가슴 벅찬 시작의 단계에서 외치는 "시작이 반이다."는 설레는 말이다.

기초적인 독서습관도 없이 무작정 글을 써보겠다고 시작한 블로그의 하루하루를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활자 중독에 빠지려는 마음을 먹고 도서관에서 고른 책이 사이토 다카시의 2000자를 쓰는 힘이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책상머리에 틀어박히고 싶다는 이야기는 감히 아무에게나 말하지 못할 비밀이다. 더군다나 내년에 입주 예정인 집은 어마한 대출금을 필요로 하는 보금자리인데다 파트타임 같은 아르바이트만 조금씩 해왔던 나로서는 외벌이 남편에게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길 하면 모두들 대번에 요즘 같은 세상에 남편을 외벌이 시키다니 형편없는 여자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자존감도 낮아지기 쉽다.


인생을 오래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나이에 비해 꽤나 굴곡 있는 시간들이 많았고 지금도 굉장히 힘든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 출구가 없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일은 그만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먹는 데에만 4년이 걸렸다.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까지를 앞으로의 일생에 걸기로 했으니 정말 제대로 된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한다는 다급함이 생겼다. 출구가 없다면 다양한 출구를 만들어 열어두는 것은 분명 나 자신이니까.


사이토 다카시는 부담 없는 지면을 할애하여 차근하게 글쓰기를 확장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덕분에 글쓰기의 매력에 생각보다 빨리 빠져버릴 듯한 느낌이 든다.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평생 해왔고 펜대를 굴리는 사람들을 동경해온 시간 역시 꽤 길었는데 왜 이제서야 써보려고 마음 먹었을까. 요즘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은 때라지만 해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시작을 마음먹었으니 근육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잠재의식 속의 나는 항상 틀어박혀 책을 읽고 생각하고 뭔가를 써보길 갈망해왔다. 책 안 읽는 나는 학창시절 잠깐 빠졌었던 이외수 작가의 책을 읽다가 아빠에게 엄청 혼이 나고 눈물을 뺐던 기억이 있다. 아빠를 화나게 만든 책의 이름은 '들개'였다. 여자가 '들개'따위의 이름이 붙은 책을 읽어서 나중에 뭐가 되려는 거냐는 훈계만 없었어도 난 좀 더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비난하고 싶지만 아빠는 아빠의 가정에 헌신하느라 책의 세상을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어떤 시인은 오해보다 이해가 병이라고 하지만 좀 더 강하게 반항하지 못하고 늘 순응만 해왔던 나 자신을 탓해야 옳은 것이다.


일제시대에 국민학교를 다니셨던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일본어를 기억하셨다. 내가 한글을 막 떼었던 어린 시절까지도 까막눈으로 우편함에 꽂혀 있는 우편물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셔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은 한참 할머니가 챙겨보시는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상단 자막의 단어를 나에게 물어보시곤 하던 때였으리라. 조금씩 쌓아 올린 착실함으로 할머니는 까막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삶을 사실 수 있었던 것 같다.

8년 전 스티븐 달드리의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를 보고 이틀 정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영화는 지금 당장 다시 봐도 그 정도로 울 수 있는 영화다. 한나의 까막눈은 한나의 인생을 조금도 풍요롭게 해주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애착이 생기는 캐릭터였다. 미련함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결국 무지에서 오는 낮은 자존감으로 모든 죄를 독박으로 뒤집어쓰고 일생을 감옥에서 살다가 지긋한 나이가 되어 어느 한 시절 책을 읽어준 '아이'의 도움으로 글을 깨우칠 용기를 얻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누군가는 읽고 궁금함에 영화를 보거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을 읽어 볼지도 모르니 스포일러는 여기까지.


다시 2000 자를 쓰는 힘으로 돌아가자면 글로 사고를 튼튼히 확장시키는 방법론으로 시작하여 모든 소재는 새로운 의미로 가치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것과 기록은 공공성을 가진다는 이야기 등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상엔 버릴 것이 없다.


덧글

  • 쩡서 2018/01/20 16:01 # 답글

    좋은 책 읽으셨네요 ㅎㅎ 개인적인 생각으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꾸준한 연습 만이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부서를 옮긴지 얼마안되어 문서를 작성하는데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쓰는 일이 어려운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요즘엔 잘쓰던 못쓰던 일단 쓰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 바라바스 2018/01/20 16:38 #

    쓰기의 양적인 연습이 질적인 결과로 이어지면 참 좋겠어요. 온라인 상에서 공적인 만남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뭔가를 시작하게도 해준다니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헤헷!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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